
영화 아가씨는 2016년 6월 개봉 당시 145분 러닝타임 내내 관객을 속이고 또 속이는 구조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영국 소설을 일제강점기 조선 배경으로 옮겨온 이 작품은, 제가 처음 봤을 때 비 오는 날 혼자 극장에 앉아 있었는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 구조와 두 여성 배우의 압도적인 연기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고 영화를 보고 나서 여운에 오래 남아 다시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던 추억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가씨 역에는 배우 김민희가 하녀 숙희역을 김태리가 맡아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아래 글에서 줄거리와 두 배우의 케미 그리고 해방의 서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줄거리
영화의 줄거리는 크게 세 개의 시점으로 나뉩니다. 처음엔 소매치기 숙희가 백작과 손잡고 일본 귀족 아가씨 히데코의 재산을 노리는 계획으로 시작됩니다. 숙희는 히데코의 하녀로 들어가 그녀를 백작과 결혼시킨 뒤 정신병원에 가두려는 계획에 가담하게 됩니다.
그런데 결혼식 이후 정신병원에 갇힌 건 히데코가 아니라 숙희였습니다. 사실 백작과 히데코는 처음부터 짜고 숙희를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정말 신선한 놀라움을 느꼈는데, 앞서 나온 장면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재해석되는 경험이 너무 강렬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그다음이었습니다. 히데코 역시 백작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숙희와 함께 백작을 속일 계획을 세워뒀던 겁니다.
사실 하녀 숙희와 아가씨 히데코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믿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서 백작을 골탕 먹일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숙희가 정신병원에 들어간 것도 둘이 미리 짠 각본이었고, 결국 탐욕에 눈먼 백작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귀족이지만 집에 갇혀 살던 히데코 아가씨는 자신을 망치러 온 구원자 숙희에 의해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게 됩니다.
두 배우의 케미
이 영화가 더욱 특별했던 건 당시 신인이었던 김태리의 파격적인 등장이었습니다. 제가 극장에서 봤을 때 김태리라는 배우를 전혀 몰랐는데, 스크린 위에서 보여준 연기의 깊이와 존재감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순진한 소매치기에서 사랑에 눈뜬 여성으로, 그리고 배신당한 후 각성하는 과정까지 모든 감정선이 설득력 있게 전달됐습니다. 김민희의 히데코 역시 겉으로는 순종적인 아가씨지만 내면에 강한 의지를 숨긴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문학 낭독을 강요당하며 힘든 시기를 보낸 히데코가 저택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는지, 두 번째 시점에서 그녀의 과거가 드러날 때 놀랍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히데코를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웠고 숙희는 너무나 사랑스러웠습니다. 김민희와 김태리라는 두 배우의 케미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다웠고 그래서 이 작품이 한층 더 빛을 발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배우의 호흡은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 되는 관계를 진심으로 믿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성별을 떠나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는 순간을 이렇게 아름답게 그린 영화는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떠나 실제로 김태리는 데뷔하기 전 배우 김민희의 팬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김태리가 연기한 숙희는 김민희가 연기한 아가씨를 정말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꽤 두근두근 거렸고 더욱 집중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해방의 서사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아가씨"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변질된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본래의 아름다운 뜻을 되찾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여성을 도구나 소유물로 보는 남성 권력자들의 시선을 무너뜨리고, 두 여성이 스스로 운명을 다시 쓰는 이야기로 완성됩니다. 저는 마지막 장면에서 히데코와 숙희가 일본행 배를 타고 선실에서 서로를 확인하는 장면을 보며 묘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모든 속박과 감시에서 벗어난 두 사람의 자유가 제 마음속에도 전달되었습니다. 박찬욱 특유의 정교한 미장센과 시대적 배경을 살린 연출 덕분에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제6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이후 전 세계에서 극찬을 받은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탐욕으로 얽힌 남성들은 결국 수은 연기 속에서 사라지고, 서로를 속이며 시작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두 여성은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대비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오래 남았습니다.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이유는 반전을 알고 나서 보면 처음 장면들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히데코의 표정 하나, 숙희의 말투 하나가 모두 복선이었다는 걸 깨닫는 재미가 있습니다. 반전 영화를 좋아하거나 박찬욱 감독의 연출을 좋아하신다면, 아가씨는 반드시 한 번은 봐야 할 작품입니다. 아 작품은 박찬욱 감독이 만든 영화 중 가장 흥행에 성공하였고 수많은 팬덤을 양성했으며 이 영화로 인해 배우 김태리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아가씨 히데코와 하녀 숙희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보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서로에게 구원이 되는 사랑이 무엇인지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보며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