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박하사탕을 2000년도에 개봉한 작품으로 이창동 감독이 연출하였고 배우 설경구 씨와 문소리 씨가 출연한 명작입니다. 이 작품은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정말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렇게 마주한 영화 박하사탕은 그날 밤 제 마음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명작이라고 알려진 영화들은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보게 되지만, 박하사탕은 아무런 준비 없이 봤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봤다면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이 영화의 깊이가, 30대가 되어서야 제 가슴에 제대로 와닿았습니다. 순수했던 시절 가슴에 꿈을 품고 살았던 한 사람이 역사적 사건 앞에서 어떻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이 참 슬프게 영상 속에 담겨 있습니다. 아래에서 영화의 줄거리와 배우 설경구가 연기한 영호 그리고 작품 속 상징적 요소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역순 구성 연출
철길 위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는 영호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관객에게 강렬한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왜 저런 상태가 됐을까. 일반적으로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며 인물의 변화를 보여주지만, 이창동 감독은 정반대 방식을 택했습니다.
1999년부터 1979년까지 거꾸로 흘러가는 구성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보면 볼수록 이보다 탁월한 방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역순 구성이 효과적인 이유는, 결과를 먼저 보고 원인을 추적하면서 관객 스스로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이 몰입도를 극대화하기 때문입니다. IMF로 모든 것을 잃은 영호가 철길 위해서 인생의 마지막 선택을 하는 1997년, 형사 시절 운동권 학생을 괴롭히던 1987년, 그리고 광주에서 일어난 인생을 바꿀만한 실수를 한 1980년. 각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영호가 어떻게 괴물이 되어갔는지 그 과정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아 과정을 이창동 감독을 역순 구성 연출로 보여주었는데 영화를 보면 볼수록 관객은 점점 더 영호라는 인물에 공감하게 되고 가슴 먹먹한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설경구 연기
솔직히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설경구라는 배우에 대해 크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하사탕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넋이 나간 중년 남성부터 순수했던 청년까지, 한 사람 안에 이렇게 다양한 모습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설경구는 몸으로 증명했습니다. 특히 식당에서 아이를 향해 개 흉내를 내는 장면과, 그 아이의 아버지가 과거 자신이 괴롭히던 운동권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의 표정 변화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삶은 아름답다, 그렇죠?"라는 대사를 건네는 영호의 눈빛에서 죄책감, 자기혐오, 체념이 동시에 읽혔습니다. 제가 직접 여러 번 돌려보며 확인한 건데, 설경구는 각 시대의 영호를 연기할 때 걸음걸이부터 눈빛까지 완전히 다르게 가져갑니다. 1980년 광주에서 우발적 실수를 한 후의 망연자실한 표정과, 1999년 철길 위에서 절규하는 모습이 같은 배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설경구는 이 영화로 그 해 각종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휩쓸었고 연기파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설경구 씨는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였지만 저는 영화 박하사탕에 그가 연기한 영호가 가장 아름답고 빛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상징적 요소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주인공이 몰락하면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거나, 반대로 전적으로 본인 책임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박하사탕은 그 둘 사이의 복잡한 지점을 정확히 포착합니다.
영호는 분명 피해자입니다. 1980년 광주에 투입되어 한 사건으로 여고생에게 실수를 한 건 그가 선택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한순간의 사건이 영호의 모든 인생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에게 벌을 주듯 직업적으로 형사가 되어 남을 괴롭히고, 첫사랑 순임을 스스로 밀어냅니다. 영호를 보다 보면 스스로 망가지기를 선택한 사람 같습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기에 인생의 희망을 어느 순간 포기해 버립니다.
하지만 동시에 영호는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경찰 생활을 하며 선배들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히고 , 홍자와 결혼한 뒤에도 다른 사람과 사랑을 즐기며, 주식과 빛으로 가정을 파탄 냅니다. 힘든 과거가 있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이창동 감독이 탁월한 건 이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IMF라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뒤틀어놓았는지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서 개인이 내린 선택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습니다.
순임이 건넨 박하사탕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입니다.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맛, 입안에서 서서히 녹아 사라지는 사탕처럼 영호의 순수함도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사라져 갔습니다. 영호가 군대에서 모아뒀다던 박하사탕이 실제로 나오지 않는 건, 그가 이미 그 순수함을 잃어버렸다는 방증일 겁니다. 출동 명령이 떨어진 날 떨어진 박하사탕이 동료들에게 짓밟히는 장면은, 앞으로 영호에게 일어날 일들을 예고하는 듯했습니다. 1979년 야유회에서 순임과 처음 만나 박하사탕을 받던 영호는 사진작가를 꿈꾸는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풀밭에 누워 눈물을 흘리는 젊은 영호를 보면서, 저는 참 오랫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습니다. 이 순수한 사람이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찔렀습니다. 세월이 더 지나 제가 40대, 50대가 되어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아마 통곡을 하며 볼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영호의 선택들이, 그가 놓친 기회들이 더 절실하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영화 박하사탕은 볼 때마다 다른 의미로 가슴을 파고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작품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냉철한 시선과 설경구의 혼신을 다한 연기가 만들어낸 이 걸작은, 한국 영화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습니다. 어느 날 인생이 참 막막하게 느껴지고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다 문득 후회가 가득한 날에 생각나는 이 작품은 인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숙명적 슬픔에 대해 철학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과연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서 삶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 타고난 운명이란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을 때 영화 박하사탕을 추천드립니다.